파닐 사르바로프 중장은 월요일 오전 모스크바 남부에서 차량 아래에 설치된 폭발물이 폭발하면서 사망했다./러시아 국방부 보도자료 & 보도영상 캡춰
22일(현지시간) 오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남부 주택가에서 러시아군 총참모부 작전훈련국장 파닐 사르바로프(Fanil Sarvarov) 중장이 차량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상이 진행되던 바로 그 시각에 발생해, 협상 테이블과 전장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55분경 모스크바 남부 오레코보-보리소보 유즈노예(Orekhovo-Borisovo Yuzhnoye) 지구 야세네바야(Yasenevaya) 거리 인근 주차장에서 사르바로프 중장이 탑승한 흰색 기아 쏘렌토 차량이 폭발했다. 목격자들은 중장이 시동을 걸고 수 미터 이동한 직후 차체 하부에 설치된 폭발물이 터졌다고 증언했다. 차량의 문과 뒷유리는 완전히 비산됐으며 차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파닐 사르바로프 중장은 월요일 오전 모스크바 남부에서 차량 아래에 설치된 폭발물이 폭발하면서 사망했다./러시아 국방부 보도자료 & 보도영상 캡춰
사르바로프 중장은 1969년 러시아 페름(Perm)주 출신으로 체첸 전쟁과 시리아 내전에 참전한 베테랑 지휘관이다. 그는 2016년부터 총참모부 작전훈련국을 이끌며 러시아군의 전투력 유지와 신병 교육, 작전 수립을 총괄해왔다. 2024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의해 중장으로 진급한 그는 용기훈장, 조국공로훈장, 군사공로훈장 등을 수훈한 군 핵심 인사였다. 수사위는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직접 참여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역할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 암살은 지난 1년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세 번째 고위 장성 암살 사건이다. 지난해 12월 17일 이고리 키릴로프(Igor Kirillov) 국방부 화생방전 방어사령관이 전기 스쿠터에 설치된 폭탄으로 부관 2명과 함께 사망했으며, 올해 4월에는 야로슬라프 모스칼리크(Yaroslav Moskalik) 총참모부 주작전국 부국장이 차량 폭탄으로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키릴로프 암살에 대해 책임을 주장한 바 있다.
러시아군 총참모부는 러시아 군사 구조의 중앙 두뇌이자 실제 작전 통제 본부로, 국방부가 행정과 예산을 담당한다면 총참모부는 국가 방위 계획 수립과 작전 통제, 전략 정보 수집을 총괄한다. 사르바로프가 이끌던 작전훈련국은 전군 단위 합동 훈련 계획 수립과 실전 부대의 전투 능력 검증, 현대전 교훈의 전술 반영을 담당하는 핵심 조직이다.
사건 발생 당시 미국 마이애미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중재로 미국, 우크라이나, 러시아 고위급 특사들이 평화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미국 측에서는 스티브 윗코프(Steve Witkoff) 중동 및 우크라이나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 외교 고문이,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루스템 우메로프(Rustem Umerov) 국방장관과 안드리 흐나토프(Andriy Hnatov) 총참모부 참모차장이, 러시아 측에서는 키릴 드미트리예프(Kirill Dmitriev) 러시아 직접투자펀드 최고경영자가 참석했다.
파닐 사르바로프 중장은 월요일 오전 모스크바 남부에서 차량 아래에 설치된 폭발물이 폭발하면서 사망했다./러시아 국방부 보도자료 & 보도영상 캡춰
윗코프 특사는 협상이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으며 90% 이상의 쟁점에서 합의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협상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20개 조항 평화안이다. 그러나 러시아 측 유예리 우샤코프(Yury Ushakov) 보좌관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의 수정 제안이 "비건설적"이라며 러시아의 최대주의적 요구가 관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 강경파 블로거 안드레이 루덴코(Andrey Rudenko)는 "적이 평화를 논하면서도 뒤에서는 더 큰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서의 양보 압박에 굴하지 않고 러시아 심장부를 언제든 타격할 수 있다는 역량을 과시함으로써 러시아의 무조건적 항복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분석하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은 한반도 안보 지형과도 직결된다. 북한은 지난해 10월부터 약 1만2천~1만5천 명의 병력을 러시아에 파병했으며, 주로 쿠르스크(Kursk) 지역 등 최전선에 배치되어 상당한 인명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병력뿐 아니라 1200만 발의 포탄과 200문 이상의 장거리 포 체계를 공급하며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지탱하는 병기창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살상 군수물자 및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폴란드를 거점으로 한 대규모 방산 수출을 통해 유럽의 안보 공백을 메우는 간접적 기여자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3월 체결된 한-폴란드 전략적 동반자 관계 실행계획은 한국의 K2 전차와 K9 자주포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의 방어력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 됐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현재 약 23억 달러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인 재건 사업 참여를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현대건설은 보리스필 국제공항 확장 및 현대화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삼성물산은 리비우(Lviv) 시 스마트 시티 개발 협력 계약을, 현대엔지니어링은 크리비리흐 모듈러 주택 건설 및 비료 공장 복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전쟁이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확대되며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는 비극적 현실을 드러낸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현재 1270만 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23만 채 이상의 주거 건물이 파괴되어 200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혹한 속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 2023년 카호우카(Kakhovka) 댐 붕괴는 8만3천 톤 이상의 중금속과 기름을 하류로 흘려보내 흑해 생태계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오염시켰다.
전문가들은 사르바로프 중장의 사망이 러시아 안보 체계의 치명적 허점을 노출시켰을 뿐 아니라, 러시아군의 전투 준비 상태를 점검하는 컨트롤 타워 기능 부재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주택가 한복판 공용 주차장에서 군 핵심 인사의 동선을 완벽히 파악해 정밀하게 폭탄을 설치했다는 점은 러시아 내부 보안망이 우크라이나 정보국이나 특수부대에 의해 심각하게 침투당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 경제는 전쟁 장기화로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고 있다. 실업률은 2% 초반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임금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16.5~21%까지 끌어올렸다. 유럽 시장 상실 후 중국은 러시아 수출의 30%, 수입의 35%를 차지하며 최대 교역국으로 자리 잡았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이번 사건은 러시아의 권위주의 체제가 내부 안보조차 담보하지 못하는 취약한 구조임을 드러낸다. 푸틴 대통령은 보안 기관 개선을 거듭 촉구하고 있으나, 권력이 집중된 체제일수록 정보 왜곡과 현장 통제력 약화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명분 하에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나, 암살과 같은 비정규전의 확산은 장기적으로 법치주의와 인도주의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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