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14세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삼종기도를 드리고 있다/바티칸 뉴스


로마 바티칸 교황청 축복의 홀에서 22일(현지시간) 거행된 성탄 하례식이 단순한 연말 인사를 넘어 레오 14세(Pope Leo XIV) 교황의 개혁 의지를 천명하는 자리가 됐다. 올해 5월 취임한 레오 14세는 이날 교황청 관료들을 향해 "우리는 자신의 텃밭만을 가꾸는 단순한 정원사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제자이자 증인"이라며 부서 이기주의와 권력 사유화를 정면 비판했다.

레오 14세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다른 민족, 종교, 문화 간의 보편적 형제애를 위한 누룩이 되도록 부름받았다"며 "이기심과 개인주의가 아닌 상호 사랑과 연대"를 강조했다. 미국 시카고 출신으로 페루 선교사 경험을 가진 그는 교황청 내부의 관료적 할거주의를 '자신의 텃밭을 가꾸는 정원사'에 비유하며, 행정 권력에 안주하는 고위 성직자들에게 선교적 사명으로의 복귀를 촉구했다.

교황은 즉각적인 후속 조치로 내년 1월 7일과 8일 전 세계 추기경들을 로마로 소집했다. 성년 폐막 직후라는 이례적인 시점에 잡힌 이번 추기경 회의는 2026년을 레오 14세 재임의 실질적 통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AP통신은 "새해가 비공식적으로 그의 재임 기간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레오 14세의 개혁 드라이브는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체계적인 관리 능력을 발휘하는 양상이다. 그는 연설에서 4월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상기시키며, 자신의 재임이 개혁의 중단이 아닌 계승과 심화임을 분명히 했다.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 출신인 그는 '일치, 사랑, 진리'라는 아우구스티노 영성을 바탕으로 교황청을 단순한 행정 기구가 아닌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고자 한다.

교황청 내부에서는 2022년 반포된 교황령 '프레디카테 복음'의 이행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개혁안은 평신도의 고위직 진출과 부서 간 수평적 협력을 강조하지만, 수세기간 바티칸을 지배해온 성직자 중심 관료주의 세력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막시미노 카바예로 레도(Maximino Caballero Ledo) 경제사무국 장관이 주도하는 고강도 긴축 정책이 더해지면서 부서 간 예산 확보 경쟁도 심화됐다.

레오 14세는 취임 후 주요 보직 인사를 단행하며 친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맡았던 주교부 장관 자리에 교회법 전문가인 필리포 이안노네(Filippo Iannone) 대주교를 임명했다. 이안노네 대주교는 라틴아메리카 위원회 의장직도 겸임하게 돼 레오 14세의 기반인 남미 교회와의 연결고리가 강화됐다.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의미 있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12월 신임 주한 교황대사로 임명된 신형식(Shin Hyung-sik) 주교는 로마 인터뷰에서 "2027년 교황 방한은 한반도 평화의 중요한 계기"라고 밝혔다. 그는 레오 14세가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할 것을 재확인하면서 "교황이 남북한을 모두 방문한다면 한반도 긴장 완화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올해 5월 콘클라베에서 레오 14세 선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추기경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레오 14세에 대한 지지가 "초기부터 압도적이었다"고 밝혔다. 교황의 최측근에 한국인 추기경이 포진해 있다는 점은 2027년 서울 청년대회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긍정적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레오 14세는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행동을 예고했다. 페루 아마존 지역 인근에서 주교로 재직하며 환경 파괴를 목격한 그는 성경의 "땅을 지배하라"는 구절이 자연 착취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오용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태양광 패널 사용이나 전기차 도입과 같은 구체적인 기후 기술 도입을 지지하며, 교황청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5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는 1985년부터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아우구스티노회 총장을 두 차례 역임하며 글로벌 경영 감각과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를 주교부 장관으로 발탁한 것은 이러한 능력 때문이었다.

내년 1월 추기경 회의를 기점으로 교황청 개혁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부서 통폐합이나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이 예상되며, 긴축 정책도 지속될 전망이다. 레오 14세는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가 강조한 '보편적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은 분쟁 지역에서의 평화 구축은 물론 한반도를 포함한 국제 사회의 화해와 연대를 위한 교황청의 새로운 외교 노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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