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딜버트'의 작가 스콧 애덤스가 2014년 캘리포니아주 플레전턴에 있는 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Lea Suzuki / The San Francisco Chronicle via Getty Images file
13일(현지시간), 현대 직장인의 애환을 대변하며 전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만화 ‘딜버트(Dilbert)’의 작가 스콧 애덤스(Scott Adams)가 별세했다. 향년 68세. 그의 죽음은 단순한 유명 만화가의 부고를 넘어,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사회가 겪어온 문화적 통합의 붕괴와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애덤스의 전처인 셸리 마일스(Shelly Miles)는 유튜브 채널 ‘스콧 애덤스와의 리얼 커피(Real Coffee with Scott Adams)’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공식 확인했다. 마일스는 애덤스가 생전 남긴 “나는 놀라운 삶을 살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쳤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대독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사인은 전이성 전립선암(Metastatic Prostate Cancer)으로 밝혀졌다. 애덤스는 지난 2025년 5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암 진단 소식 직후 자신의 팟캐스트를 통해 4기 암 투병 사실을 대중에게 공개한 바 있다. 그는 사망 직전인 2026년 1월 1일, 하반신 마비 증세와 함께 “회복 가능성은 사실상 0%”라며 자신의 임종을 예고하기도 했다.
1957년 뉴욕주 윈덤에서 태어난 애덤스는 크로커 국립은행(Crocker National Bank)과 퍼시픽 벨(Pacific Bell) 등에서 17년간 근무하며 겪은 관료주의의 비효율성을 만화 ‘딜버트’로 승화시켰다. 1989년 연재를 시작한 ‘딜버트’는 무능한 경영진이 승진한다는 ‘딜버트 원칙(The Dilbert Principle)’을 유행시키며 전 세계 샐러리맨들의 ‘큐비클(Cubicle·칸막이 사무실)’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풍자의 거장’이었던 애덤스의 말년은 미국 사회의 ‘문화 전쟁(Culture War)’ 한복판에서 얼룩졌다. 그는 2010년대 중반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설득의 대가”로 칭송하며 대안 우파(Alt-right) 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했고, 백신 회의론과 반(反) 정치적 올바름(PC)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결정적인 파국은 2023년 2월 발생했다. 애덤스는 라스무센 리포트(Rasmussen Reports)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유튜브 방송에서 “흑인의 절반이 백인과 괜찮지 않다면 그것은 증오 집단”이라며 “백인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흑인들에게서 멀리 떨어지라는 것”이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발언의 여파로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뉴욕 타임스(NYT) 등 수백 개의 주요 신문사가 ‘딜버트’ 연재를 중단했으며, 배급사와 출판사마저 계약을 해지하는 등 미국 주류 사회에서 사실상 퇴출(Cancel)당했다. 이후 그는 검열 없는 자유를 표방하는 동영상 플랫폼 럼블(Rumble) 등으로 무대를 옮겨 활동해왔다.
외교가에서는 애덤스의 삶과 죽음이 미국의 소프트파워(Soft Power)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조셉 나이(Joseph Nye) 교수가 정의한 미국의 문화적 매력은 ‘딜버트’가 보여준 자아비판적 유머와 다양성에서 기인했으나, 애덤스의 말년은 인종 갈등과 혐오, 그리고 배제라는 미국 사회의 치부를 전 세계에 생중계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관영 환구시보(Global Times) 등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 매체들은 이러한 미국 내부의 분열상을 “미국식 민주주의의 실패”로 규정하며 자국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애덤스 사태는 미국이 더 이상 통합된 가치를 제시하는 리더 국가가 아닌, 내부적으로 분열된 불안정한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주류 미디어와 대안 플랫폼으로 양분된 ‘두 개의 미국(Two Americas)’ 현상은 대미 외교의 난이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애덤스의 사례는 한국 기업과 외교 당국에도 시사점을 준다. 온라인 여론의 극단화와 인플루언서의 평판 리스크가 외교 및 비즈니스 환경에 미칠 수 있는 파급력을 보여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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