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청은 쿠바 한인사회 독립운동의 선구자 임천택(1903~1985) 지사를 2025년 5월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했다고 15일 발표했다. 임 지사는 쿠바에서 독립자금 모금을 주도하고 민족교육을 통해 한인 정체성 수호에 앞장선 인물로, 그의 공적을 기려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임천택 지사는 1903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1905년 어머니를 따라 멕시코로 이주한 후, 1921년 18세의 나이에 300여 명의 한인과 함께 쿠바로 재이주해 마탄사스 지역에 정착했다.
쿠바 주재 일본 영사관이 현지 한인들에게 일본인으로 재외국민 등록을 요구하자, 임 지사는 이에 저항해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를 설립하고 서기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총무, 회장, 고문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쿠바 현지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한인들의 광복 의지와 일본인들과의 차별성을 대외적으로 선언하기 위해 쿠바 내 3개 국민회 지방회를 대표하는 11인 중 한 명으로 '재큐한족연합외교회' 결성을 주도했다. 2년 후에는 이를 발전시킨 '재큐한족단'을 출범시켜 체계적인 독립운동 체제를 갖추었다.
임 지사는 1920년대 말 김구 선생으로부터 임시정부의 재정난을 알리는 편지를 받고, 쿠바 한인들을 규합해 모금 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쿠바 한인들은 식구 수대로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판 돈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등 독립운동 자금 지원에 적극 나섰다.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임 지사의 주도로 1,289달러의 기금을 모아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납부했으며, 246달러를 따로 모아 쿠바 아바나 소재 중국 은행을 통해 충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에게 송금했다. 일주일에 2~3달러 정도였던 당시 한인들의 임금을 고려하면 상당한 금액이었다.
또한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1930년 한인 100여 명과 함께 지지대회를 개최하고 특별후원금 100달러를 모금해 조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김구 선생은 이러한 해외 동포들의 헌신에 대해 "백범일지"에서 "미국 본토와 하와이, 멕시코, 쿠바의 1만여 명의 동포는 비록 대다수가 노동자였지만 애국심은 강렬했다"고 기록했다.
임 지사는 민족교육과 언론 활동에도 열정을 쏟았다. 1925년 쿠바 최초의 한인학교인 '민성국어학교' 교사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교장직을 맡아 한글, 역사, 문화를 가르치며 민족 교육과 차세대 한인의 정체성 함양에 힘썼다.
1930년에는 재정난으로 운영이 중단됐던 '진성국어학교'를 재건하고, 야학교 '청년학원'을 설립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독서, 강연, 토론 교육을 실시하며 독립운동을 이끌 차세대 지도자 양성의 기반을 다졌다.
1930년대부터 약 10년간 '신한민보' 쿠바 통신원으로 활동한 임 지사는 쿠바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상황을 미국과 한국에 알리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공보' 등의 잡지를 쿠바 한인사회에 배포해 조국 독립을 위한 국제적 연대활동을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1941년부터 '신한민보'에 '쿠바 재류동포의 이주 20년 역사'를 연재했고, 이를 토대로 1954년 '쿠바이민사'를 출간했다. 이 책은 쿠바 한인 이민사와 독립운동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기록물로, 현재 해외 한인사 연구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상덕 재외동포청장은 "임천택 지사는 지구 반대편에서 조국 독립의 희망을 꽃피운 애국자였다"며 "일평생에 걸친 조국에 대한 헌신을 조명해 그의 숭고한 업적을 후대가 보다 잘 기억할 수 있도록 '이달의 재외동포'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한편, 재외동포청은 한국과 쿠바의 수교(2024년 2월)를 기념해 작년 말 임천택 지사의 손녀 노라 림 알론소를 비롯한 쿠바 한인 3~4세를 국내로 초청해 선조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돌아보는 등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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